사건의 배경이 된 시카고
영화 아웃핏의 모든 사건은 시카고에 있는 수제 양복점 "L.BURLING"에서 이뤄집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배경장소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양복점을 오고 가는 인물들만이 이 영화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갑니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의외로 꽤 몰입하며 감상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연기와 반전이 영화의 협소한 스케일을 충분히 메꿔주고 있습니다.
왜 하필 시카고 일까요. 제1차 세계대전 시절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의 북부 도시들은 전쟁으로 인한 호황기를 맞습니다. 특히, 시카고는 남과 북을 잇는 철도교통의 중심지이었으며 풍부한 일자리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미국 남부지역의 흑인들 또한 시카고로 대거 이동을 했고, 흑인들과 백인들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한 흑인소년이 백인 구역 호숫가에서 수영을 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익사한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인종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시카고는 주 방위군이 폭동을 잠재우기 전까지 며칠 간 무법지대가 되었습니다. 폭동이 진화된 이후에도 사회적인 폭력과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1920년대 한 여행객은 시카고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시카고에 평화는 없다. 시카고에서 과거와 미래는 허물을 벗고 새로운 허물을 쓰는 뱀처럼 곧 버려질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면서 또 다른 전통의 족쇄를 발작적으로 떨구어 버리는 무질서한 존재를 낳는다. 이 도시는 공포의 빛의 도시이며, 야성이고 지칠 줄 모른다. 여기에 욕망과 그 억제를 위한 공간은 있으나, 무기력함을 위한 공간은 없다. 여기에는 끝없는 투쟁이 있으며, 평화를 향한 온화한 동경은 없다. 시카고에 평화는 없다."
폭력 도시로서의 시카고의 이미지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알 카포네(Al Capone)를 중심으로 하는 시카고 조직폭력단인 The Outfit의 활약으로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아웃핏은 1910년대 뉴역에서 옮겨 온 이탈리아 이민자 계통의 갱단으로 시카고 시내의 각종 용역업과 소매업을 장악한 뒤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도박, 매춘 그리고 금주법 시대의 주류 제조와 유통을 장악한 아웃핏은 불법적 사업의 폭력적 운영을 통해 경쟁자를 제거하고 공권력을 제압했습니다. 1910년대 경제적인 급성장과 인종폭동과 같은 갈등의 분출, 격변하는 시카고 사회의 긴장과 만연한 폭력이 마피아 세력을 키워왔고 이런 시대적 흐름은 이 영화의 배경인 195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양복점의 두 인물
양복점의 재단사 레오날드(마크 라일런스)는 영국에서 시카고로 넘어 온 품격 있는 인물입니다. 옷감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는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실력이 있는 재단사입니다. 위험한 시카고의 한 동네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며 갱들이 수시로 들락거리지만 항상 온화함을 유지합니다. 사실 그의 양복점은 아일랜드 계열 마피아 두목 보일의 수금 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보일은 레오날드가 처음 양복점을 열었을 때 레오날드의 첫 손님이었습니다. 레오날드는 이런 위험한 동네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갱들에게 편견을 갖고 대하지는 않되 그들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갱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양복점 한 구석에 있는 보관함을 이용하는 것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합니다.
한편, 레오날드의 조수로 일하는 메이블(조이 도이치)은 시카고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그녀는 항상 시카고를 떠나 파리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녀는 양복을 만드는 일을 잘하지도 배우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만, 레오날드와 오랫동안 일해왔습니다. 레오날드와 메이블은 어쩌면 아버지와 딸과 같은 마음을 서로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랬을까
사건은 결국 양복점 안에서 시작되고 양복점이 불타오르며 종결됩니다. 모든 것은 레오날드가 계획한 것입니다. 지역의 또 다른 세력인 라퐁텐을 이용해 보일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메이블은 그녀의 소원대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평온하게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레오날드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는 레오날드의 과거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레오날드는 영국에서 자신이 과거에 몸담았던 조직으로 인해 아내와 어린 딸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레오날드에게 메이블은 딸처럼 느껴지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딸은 구하지 못했지만, 항상 마피아들로 인해 위협받는 시카고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메이블만큼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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